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애매한 게 아니다

왜 우리는 반드시 '전문가’가 돼야한다고 자꾸 생각할까요? 왜 우리는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전부 다 애매하다’고 말할까요? 정말로 여러가지 일을 적당히 하는 게 한 가지 일을 잘하는 것보다 별로인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감히 말해볼게요. '전문가’가 되는 것, 물론 너무나 좋고, 너무나 사회에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어쩌면 '그렇지 않은 DNA’를 가진 사람도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애매한’ 걸까요?

옛날 사람들의 직함을 갑자기 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 사람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철학자이자 과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라는 것도 신기하죠. 이 사람의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는 엄청나게 디테일한 삽화도 실려 있습니다. 과학자가 그림도 잘 그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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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애매한’ 사람일까요? 아마 아닐겁니다. 그 밖의 예도 정말 많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특허국 사무소 정규직이라는 돈을 버는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본업이 아닌 일종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합니다. 그 밖에도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사랑해 바이올린을 자주 연주했다고 합니다. 에밀리 와프닉의 책 '모든 것이 되는 법’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이른바 '다능인’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는 1년마다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동시에 여러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고, 여러가지 분야를 이해해야 하는 하나의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본업이 있는데 ‘사이드 허슬’,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도 많이 있죠.

인공지능 연구 분야 중 식지 않는 열기를 보여주는 분야로 ‘Transfer Learning’ (전이학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의 업무 수행에 적합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추후 다른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 쉽게 말해 학습의 능력이 다른 학습의 능력으로 전이된다는 것입니다. 왜 전이학습이 가능할까요? 서로 다른 분야라고 생각했던 두 분야 사이에 명시적이지 않더라도 연결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연히 인공지능 뿐만 아니라 인간 뇌도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와 한글을 아는 한국인은 다른 국가, 특히 서양의 언어를 모국어로 갖고 태어난 사람들보다 더 쉽게 일본어와 문자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어의 어순’을 학습한 기억, '한자 문자체계 및 발음체계’를 학습한 기억이 있고 이것이 일본어와 문자 학습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서 확인하기로는 예외도 존재합니다. 과거 A 업무를 학습한 모델이 추후 B 업무를 학습하였을 때의 능률이 순수하게 B 업무만 학습했을 때의 능률보다 떨어진다는 것이죠. 이같은 현상을 음의 전이 (Negative Transfer) 라고 부르는데, 음의 전이 현상을 제어하고 양의 전이 (Positive Transfer, 다른 업무의 학습 효과를 살리는 것)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이 분야에서 중요합니다.

저는 인간 뇌가 이런 전이학습에 엄청나게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흔히 AI 시대라고 말하고, AI와 로봇에게 대체되지 않을 직업을 대라고 하면 보통 '가장 전문적인 직업’이 가장 먼저 대체될 것이다, 하는 예측을 많이 내놓죠. 공장에서 물건을 운반한다거나, 사람의 말을 받아적는다거나, 한 가지 언어를 단순 번역한다거나… 그 과정에서 다능인이 되는 일은 정말로 강력한 시장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잘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E-sports나 정치를 좋아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E-sports 동시통역사, 정치 동시통역사가 되고, 말을 잘하고 방송과 매체를 잘다루는 과학자가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차 마시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티소믈리에’가 되고, 화장하기를 좋아하고 연예인, 셀럽을 좋아하고 SNS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이런 다양한 업무의 교차점에 서 있는 직업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지지 않을까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최재천 교수님은 학문과 학문이 교차점에서 하나가 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이야기를 담는 책 윌슨의 저서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를 '통섭’이라 번역하며 이 접근법이 현대사회를 열어가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총망라하는 저의 가설은 한 줄 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하면 모든 것을 잘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각각의 분야에서 '전문가’에 해당하는 사람보다 그 분야를 잘 알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천하무적은 없죠. 그러니 모두가 모든 것을 다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다능인이라고 생각된다면, 이 일을 하다가 저 일을 하고 싶고, 이 일을 하면서도 저 일을 하고 싶고, 돈 버는 본업이 있지만 돈이 안 되는 취미나 직업으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등 엄청나게 다양하고 제멋대로인 당신의 뇌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세요.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애매하단 게 아닙니다.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본문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일본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의 '그것이 약속이니까 짤’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히 '전이학습’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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