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옳고, 만약 누군가가 옳지 않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만약 당신이 틀렸고, 만약 누군가가 옳았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만약 동료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면, 당신은 동료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만약 당신이 옳고, 동료가 틀렸다면, 동료는 당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당신>이나 <동료>를 그 누구로 바꿔도 똑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 만약 당신이 옳다면?
  • 만약 가족이 옳다면?
  • 만약 친구가 옳다면?
  • 만약 투자자가 옳다면?
  • 만약 연인이 옳다면?
  • 만약 고객이 옳다면?

애석하게도 옳고 그름 같은 건 없기 때문에 문제는 점점 더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이고 복잡해진다.
그러나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어쩌면 우리가 가진 지성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타협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야만 한다.

용기를 내자.
타협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만큼,
타협하지 않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만큼
용기를 내자. 있는 힘을 전부 쥐어 짜는 용기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