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존재의의: Marketing X Innovation

다이아몬드 반지와 에르메스 지갑은 케케묵은 혁신이다. 그러나…

당신은 다이아몬드 반지와 에르메스 지갑을 가지고 싶은가? 그들의 제품은 혁신적인가? 그들의 제품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다이아몬드의 잘 깨지지 않는 성질 자체는 혁신적이다. 그러나 공업용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의 도대체 무엇이 대단한가? 다이아몬드는 도대체 어째서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가?

드 비어스는 다이아몬드를 의미있는 보석으로 만드는 마케팅 작업을 하였다. 그래서 ‘연인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세요.’, '다이아몬드는 영원합니다.'라는 이미지를 구축, 이런 견고함과 영원성을 주제로 한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하여 결혼 반지 시장을 개척하여 다시 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때는 미국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 이미 전체적의 부의 규모에서 상류층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있었고 마침 드 비어스의 마케팅 성공과 맞물려 다이아몬드 소비가 급증하게 된다.

소위 디자이너 브랜드, 명품 브랜드라고 부르는 브랜드의 제품도 마친가지이다. 제품 자체의 혁신성이 0은 아니겠으나, 마케팅의 비중이 훨씬, 훨씬 더 크다.

어쩌면 명푼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의 <디자인>이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테이션 업체가 그들과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었다면 그 제품에는 같은 값을 지불할 의사가 도무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케팅 문제다.

2013년 출시된 구글글래스는 혁신적이었다. 근데… 안 팔렸다.

반대 사례도 있다. 구글은 무려 2013년에 안경과 스마트폰을 합친 것 같은 아주아주 최첨단의, 아주아주 혁신적인 개인 단말기 <구글 글래스>를 만들었다. 구글 글래스는 분명히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어떤 고객도 안경에 카메라를 달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구글 글래스를 착용하고 있는 걸 보면 짐짓 겁을 먹는다. <구글 글래스>는 마케팅에 약간 실패했다. 그러나 이 혁신 자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 현재 구글은 구글 글래스의 가능성을 다시 되찾고 있다. 엔지니어가 공장 설비를 다룰 때 구글 글라스를 쓴다면 설비를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고, 실시간 통번역과 해설을 제공하는 방법으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이를 영어로 시장 타이밍이라고 부른다는데, 이는 넓게 보면 <마케팅> 행위에 해당한다.

마케팅은 고객의 문제를 찾는 과정이다. 광고는 마케팅이지만 마케팅은 광고 뿐만이 아니다.

다이아몬드와 에르메스도 결국 고객의 문제를 찾았다. 그들이 찾은 문제는 물질적 허영심과 치장에 대한 욕구다. 이 욕구는 얼핏 들으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던 기업이 해결하는 ‘문제’ 상황과 달라보이나, 본질적으로 같다. 이 문제에 옳고 그름은 없다.

물론 다이아몬드와 에르메스를 가진 이를 찾아가 ‘이들이 당신의 물질적 허영심과 치장에 대한 욕구 문제를 해결했군요?’ 라고 외치면 안된다. 이건 뭐랄까, 회사에서는 :whale2: 고래 이야기 금지 :no_entry_sign: 같은 맥락이다.

마케팅 행위를 통해 없던 고객의 문제가 창조될 수도 있다. 예컨데 에르메스와 LVMH 광고를 보기 전까지 물질적 허영심이 없었던 고객이 그들의 광고로 인해 갑작스레 물질적 허영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에르메스가 쓰레기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다이아몬드가 무가치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가치한 것이다. 이 관점의 연장선에서는 세상의 모든 프로덕트가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하다.

어떤 기업은 마케팅에 탁월해서 이전과 전혀 다름없는 주성분을 가진 화장품도 가로수길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5만원 받고 파는 데에 성공할 것이며 어떤 기업은 혁신에 탁월해서 광고비 한 푼 내지 않고 입소문만으로 (다만 입소문을 유도하는 행위도 일종의 마케팅 행위이다.) 고객을 끌어오는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이 중 하나만 하고 하나만 아예 안 하는 회사는 전부 다 망했거나 앞으로 힘들다.

MVP, 프로토타이핑, 프리토타이핑, MVT 등등 여러가지 단어의 의도는 사실 하나다.

이들은 모두 주어진 돈과 시간이 한참 모자란 스타트업이 마케팅과 혁신을 동시에 시작하기 위한 수단이다. 예컨데 MVP는 최소한의 제품이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혁신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혁신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아주 짧은 시간 안에 고객의 문제를 찾으러(검증하러) 갈 수 있다. 이는 마케팅 행위이다.

설문조사, 유저 피드백, 유저 테스트, 심층 인터뷰 등등, 전부 다 크게 보면 마케팅 행위이다.

기업의 존재 가치는 단지, 마케팅 X 혁신이다.

P.S. 토스의 이승건 대표께서는 이와 관련지어 제품의 체력 (Carrying Capacity)이 좋으면 광고를 덜해도 괜찮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광고를 덜해도 좋다는 건 마케팅을 덜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토스의 제품 안에 토스 내부의 다른 기능 사용을 촉진하는 광고, 외부 SNS로 공유하는 공유버튼이 얼마나 많이, 얼마나 시의적절하게 나타나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된다. 토스가 불러온 기술 혁신의 영광 뒤에는 엄청난 마케팅 천재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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