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틀러 프로그램 D+3 The First Pitch - 감사해서 울었다

[앤틀러 프로그램 D+3 The First Pitch - 감사해서 울었다.]

처음으로 많은 분들의 앞에서 공들여 준비한 <비움>의 발표자료를 들고가 내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솔직히 말해서 들어주신 분들이 어떤 눈빛을 하셨는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전하고 싶은 말들을 열심히 말했고 그것들이 잘 가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A를 진행했고, 여러 창업자분들의 질문에 어설프게라도 답변을 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어떻게 들렸을까,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을까, 나와 함께 일하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또는, 이 공간 안에서 고객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한 것 같았다.

발표를 할 때 가장 뒤편에서 앤틀러 파트너님의 모습을 봤었다. 많은 분들이 지켜봐주신다는 게 엄청나게 떨리고 부끄러웠고… 그렇지만 부끄럽고 쪽팔린 일들을 자꾸자꾸 해나가면서 배움을 얻고 성장을 얻는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분들의 발표를 끝까지 열심히 들었고, 돌아가기 전에 여전히 뒤에 계셨던 파트너님에게 말씀을 물었다. 내 발표가 어설펐는지 괜찮았는지. 어떻게하면 더 잘 발표할 수 있을지… 어떻게하면 앞으로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또 이해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물어봤다.

파트너님이 좋았다고 말씀해주셨다. 인터뷰에서 뵈었던 것보다 말씀을 잘하신다고 과분한 칭찬을 해주셨다. 몇 마디 말씀을 더 듣고나서 왠지 나는 발표 뒤의 여운, 많은 분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파트너님이 해주신 말씀… 그런 여러가지 것들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어서 갑자기 울었다. 파트너님이 왜 우냐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해서 울었다.

사실은 또라이가 되고 싶었다.

    1. 상식에서 벗어나는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월요일이었을까. 어떤 분이 내 머리모양이 특이하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특이한 머리모양을 보고 나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했다. 그 분에게 기억되는 일에 성공했으니 만세다. 남들과 같은 머리모양을 갖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다운은 다운을 다운이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3인칭 표현’이 유아퇴행적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이상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필수적이었다. 포트폴리오에서도 자주 <나는> 또는 <저는> 대신 <다운은>이라는 표현을 썼다. 몇 년 전에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더 지혜로워진다. 라는 글을 읽었던 게 인상 깊어서 그랬다. 단순히 지혜로워지는 게 목표라기 보다는, 어떻게하면 내가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의 이름을 남들에게 더 여러 번 내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운이 다운을 더 잘 이해하고 남들이 다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이유가 있어서 나는 나를 다운이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80명이 들어있는 슬랙에서 채팅을 입력하는 과정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남에게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을 하고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할 수 없는 말을 자신에게 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에게 하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남에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솔직히 말해서 텍스트로 말하기를 너무 많이 하는 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소음공해일테고 누군가에게는 부담일테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선한 의지나 노력의 일면에는 분명 해악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렇게 느끼시는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나는 이것이 정말로 진심이고, 나는 진심을 다하는 방법밖에 수가 없다. 이런 나의 모습을 이해해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감사함을 입에 달고 다니는 나의 모습에 진부함을 느끼거나 회의를 느끼는 분들도 계시고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사한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시다.

소중한 존재들의 상실로부터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하게 된 나의 이런 모습이 위선적일지도 모르고 비겁한 건지도 모르고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 밖에 없다. <감사함을 빠르게 전달>하고 싶다는 나의 생각은 진짜로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느꼈던 벅차고 슬프고 기쁜 감정의 덩어리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일한다. 더 많은 이들이 내가 느낀 이것들을 느끼길 원해서 일한다.

2021년 3월 16일, 나는 이런 글을 썼었다.

나는 얼마나 멀리까지 온 걸까, 정말로 최선을 다해 온 걸까. 조금은 의문도 들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여전히 샛길이든 바른 길이든 발이 닿는대로 디뎌 한 발자국 나아간다. 어쩌면 나는 먼 길을 돌아 다시금 출발선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성취가 있었지만, 결국 계속해서 원하게 되는 것은 마음 하나인 것 같다. 좋은 성과를 내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잠시라도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내 뒤에 남겨진 나의 발자국이 조금 더 친절한 것이었기를, 조금 더 솔직한 것이었기를, 조금 더 절실한 것이기를, 그래서 영영 처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을 모르고 천진하기를 바란다.

먼 길을 돌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벌써 1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지만,
모든 것을 비운 나는 지금, 처음의 마음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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